BBC 올해의 여성 100인

  • 할리마 아덴

    케냐 인권운동가, 모델

    할리마 아덴은 히잡을 쓴 최초의 슈퍼모델이다. 소말리아계로 케냐의 난민촌에서 태어났다. 2017년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모델 에이전시 중 하나인 'IMG Models'와 계약하며 활동중에 "히잡을 벗을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항을 계약서에 넣었다.

    그녀는 히잡을 쓴 채 "보그 영국판", "얼루어",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수영복 에디션" 등의 표지를 장식한 첫 번째 모델이다. 아덴은 무슬림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 캠페인을 벌였고, 유니세프 홍보대사로도 활동했다

    그녀는 2020년 모델 활동이 이슬람 신앙과 양립할 수 없다는 이유로 모델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패션 업계를 넘나들며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팬데믹 최전선에서 우리의 안전을 위해 극한의 노력을 보여준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희생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전진하면, 우리는 세계를 다시 재정립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마소마

    아프가니스탄 검사

    마소마는 여성 검사로서 사법부에서 증거 수집과 기소 제기 등의 업무를 담당했었다. 지난 20년간 교육을 받은 아프가니스탄 여성 중 한 명인 그녀는 최근 5 년간 법무장관실 소속으로 일하며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는 점에 자부심을 느껴왔다.

    지난 8월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은 수천명의 강경파 범죄자들과 이슬람 무장세력을 석방했다. 그러면서 친정부 인사들을 사면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제 인권 단체에 따르면,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친정부 인사들을 납치하고 살해하는 상황이다.

    현재 마소마는 은신해 있지만, 미래를 알 수 없는 상태다.

    *여성들과 소녀들은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그들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여성들도 남성들처럼 국민과 국가을 위해 봉사할 수 있습니다.

  • 엘리프 샤팍

    프랑스 소설가

    엘리프 샤팍은 여성과 성소수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터키계 영국인 작가다.

    엘리프 샤팍은 부커상 단편 부문 후보에 오른 "낮선 세상에서의 10분 38초"와 BBC 선정 '세계를 만든 100권의 소설'에 이름을 올린 "사랑에 관한 40개의 규칙" 등 19권의 저서를 저술했다. 그녀의 작품은 5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정치학 박사인 샤팍은 터키와 미국, 영국에서 강의하고 있다. 2021년에는 '스토리텔링 기법의 쇄신'에 기여한 공로로 "할도르 락스네스 국제문학상"을 수상했다.

    *동양과 서양 모두 중요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과거의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과거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는 대신, 우리는 아무도 뒤처지지 않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 멜린다 프렌치 게이츠

    미국 자선사업가, 사업가

    멜린다 프랜치 게이츠는 자선사업가이자 사업가이며 여성과 소녀들을 지원하는 세계적인 활동가다. 그녀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자선 단체중 하나인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Bill & Melinda Gates) 재단의 공동 이사장으로서 이 단체의 방향성과 우선순위를 결정한다.

    그녀는 또한 여성과 가족을 위한 사회 진보를 추진하는 회사에 투자하는 "피보탈 벤처스(Pivotal Ventures)"의 설립자이며 베스트셀러 "누구도 멈출 수 없다(The Moment of Lift)"를 저술했다.

    프렌치 게이츠는 듀크 대학교에서 컴퓨터 공학 학위와 MBA 학위를 받았다. 가족과 자선 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회사를 떠나기 전까지 10 년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멀티미디어 제품을 개발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에 뿌리 깊게 자리했던 불평등을 드러내고 악화시켰습니다. 이를 회복하려는 노력의 중심에 여성과 소녀들을 두는 것은 지금의 고통을 덜어내고 미래를 위한 강력한 기반을 구축하게 해줄 것입니다.

  • 말랄라 유사프자이

    파키스탄 말라라 펀드 공동 설립자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UN 평화 사절이다. 11살 때부터 젊은 여성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위한 활동을 해왔고, 파키스탄 소녀들의 교육권 확보에 기여했다.

    말랄라는 파키스탄의 탈레반 통치 하에서 살고 있는 소녀들의 삶과 학교를 가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블로그 글을 BBC를 통해 공개했다. 그녀는 2012년 10월에는 버스에서 괴한이 쏜 총을 머리에 맞았다.

    회복 후 그녀는 모든 소녀들이 두려움 없이 배우고 활동할 수 있게 지원하는 비영리 기관, 말랄라 펀드를 공동 설립했다.

    *오늘날 수많은 여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소녀들이 질 좋은 교육을 12 년동안 무료로 안전하게 받을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합니다. 모든 젊은 여성들이 배우고 사회를 주도하는 그런 세상이요.

  • 트랄렝 모포겡

    남아프리카공화국 UN 특별보고관

    ''닥터 T'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그녀는 건강에 대한 보편적 접근, HIV 치료 및 가족 계획, '여성의 성과 및 출산 건강을 위한 권리'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트랄렝 모포겡은 현재 '신체 및 정신 건강을 위한 권리' 분야 UN 특별보고관이다.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최초의 여성이자 최초의 아프리카인이며, 그리고 최연소 특별보고관이다. 또한 "닥터T: 성 건강과 즐거움을 위한 가이드"의 저자이기도 하다.

    모포겡은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인구 재단" 소속 출산 건강 연구소가 수여하는 "40세 이하의 120인(40세 이하의 리더 120인을 선정하는 프로그램)" 중 가족계획 청년 챔피언을 수상했다.

    *공동체에 대한 애정으로 자신에 대한 돌봄을 실천하면서, 우리가 세상을 다시 정립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 아인 소 메이

    미얀마 민주화 운동가

    아인 소 메이(가명)는 미얀마 군부에 체포된 이후 최근 사면될 때까지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그녀는 미얀마 군부가 운영하는 여러 심문소와 더불어 악명 높은 양곤의 인세인 교도소에 수감됐었다. 소 메이는 구금 생활이 극도로 힘겨웠다며 구금 기간에 육체적·정신적 고문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그녀는 학생 시절부터 다양한 사회운동과 풀뿌리 민주주의 활동에 참여해 왔다. 2월 1일 군부 쿠데타 이후, 소 메이는 2월 '소음' 항쟁과 3월 말의 침묵 파업 등에 참여했다.

    석방 이후, 그녀는 정치적 활동을 재개했다.

    *세상을 재정립할 수만 있다면… 성공적으로 전염병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습니다. 세계의 모든 독재정권이 전복되고 참되고 평화로운 민주주의가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

  • 클로에 로페스 고메즈

    프랑스 발레 무용가

    클로에 로페스 고메즈는 2018년 '베를린국립발레단'에 입단한 최초의 흑인 발레리나다. 모스크바 '볼쇼이 아카데미'에서 수련한 그녀는 인종 차별을 당했고, 이러한 발레계의 차별적인 관행에 대해 '폐쇄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녀의 공개 비판 이후, 많은 유색인종 및 혼혈 발레 무용수들이 그녀에 대한 지지를 밝혔다.

    로페스 고메즈는 2020년 베를린국립발레단으로부터 계약 갱신을 거부당하자, 법적 조치를 취했다. 이후 발레단은 인종차별에 대한 내부 조사에 실시했고, 결국 합의를 통해 무용수에게 사과하고 보상금을 지급했다.

    *불행히도 우리는 평등하게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으며 우리의 성공 가능성은 인종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결정됩니다. 저는 모든 이들이 잠재력을 발휘할 기회를 누리는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 리나 알람

    아프가니스탄 배우

    리나 알람은 배우이자 인권 운동가다. 여성주의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코란을 불태웠다는 거짓된 혐의를 뒤집어 쓰고 성난 남성들에게 린치당한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이야기 "셰린 앤드 킬링 오브 파쿤다(Shereen and Killing of Farkhunda)" 등이 그 예다.

    알람은 1980년대에 아프가니스탄을 떠났고 현재 미국에 있지만 여전히 고국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9년 그녀는 UN 아프가니스탄 지원 사절단 소속 평화 사절로 임명되었다.

    *수많은 피와 희생을 통해 국가를 재건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모든 것이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몹시 가슴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더욱 튼튼한 기반에 서서 싸움을 계속해 나가야 합니다.

  • 데펠샤 토마스 맥그루더

    미국 맘스 오브 블랙 보이즈 유나이티드 설립자

    데펠샤 토마스 맥그루더는 미국 전역에서 "흑인 아들을 걱정하는 엄마들"을 하나로 모으는 단체를 설립했다. 그녀가 의장을 맡고 있는 "맘스 오브 블랙 보이즈(MOBB) 유나이티드"다. 이 단체는 주로법 집행기관을 통해 흑인 소년 및 남성들이 받는 대우에 영향을 주는 정책과 사회적 인식을 바꾸려 노력하고 있다.

    그녀는 현재 포드 재단의 최고운영책임자 겸 회계책임자이며, 글로벌 운영과 재무를 감독하고 있다.

    20여년의 경력을 가진 맥그루더는 이전에는 MTV와 블랙 엔터테인먼트 텔레비전(BET)에서 방송 기자와 고위 경영자 등을 역임했다.

    *나의 바람은 팬데믹을 벗어나서, 세계가 더 큰 동정심을 갖는 것입니다. 인간이 얼마나 상호 의존적인 존재인지를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곤경과 고난에 보다 큰 감수성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 엠마 테오펠루스

    나미비아 정치인

    엠마 테오펠루스는 지난 해 23세의 나이로 아프리카 최연소 내각 각료가 됐다. 현재는 입법부 의원과 정보 통신 기술부 차관을 겸직하면서 코로나19와 관련된 공식적인 소통을 이끌고 있다.

    그녀는 이전에는 성평등과 아동권리,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활동하는 청소년 운동가였다. 또한 '청소년 의회'의 의장과 자신이 태어난 빈트후크에서 주니어 시장직을 맡았었다.

    테오펠루스는 나미비아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고, 사우스아프리카 대학에서 '아프리카 페미니즘 및 젠더학 과정(African Feminism and Gender Studies)'을 공부했다.

    *세계는 가속화를 통해 다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수년 동안 지속되어 온 모든 계획을 빠르게 실행해야 합니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요.

  • 마르셀리나 바우티스타

    멕시코 조합 대표

    가사노동자 출신의 마르셀리나 바우티스타는 자신이 21년 전 설립한 멕시코 "가사노동자지원훈련센터(CACEH)"의 이사를 맡고 있다. 그녀는 공정한 가사노동 임금과 병가를 포함한 노동권의 보장, 가사노동자의 사회적 지위 향샹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바우티스타의 활동에는 노동자와 고용주, 지역사회 구성원들을 위한 교육이 결합되어 있다. 그녀는 협상을 통해 멕시코 정부로 하여금 착취와 폭력, 안전하지 않은 노동 조건으로부터 가사 노동자들을 보호하는 국제 노동 협약에 서명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2010년 독일의 에베르트 재단(the Friedrich Ebert Stiftung)으로부터 국제인권상을 받았다.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 활동을 하는 동안 그들의 집에서 일하는 수백만 명의 가사 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을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이와 관련된 사회적 불평등은 가사 노동이 그에 합당하게 인정받을 때 비로소 끝날 것입니다.

  • 가화

    아프가니스탄 음악가

    가화는 재능 있는 가수이자 작곡가로 5년 이상 음악계에서 활동해왔다. 아프가니스탄의 소녀와 여성에 관한 그녀의 노래들은 두터운 팬 층을 확보하고 있고, 그녀는 노랫말을 통해 현재의 상황에 대한 저항하고 있다.

    2019년, 그녀는 라민 마자르(Ramin Mazhar)의 시 '탈레반 한 가운데에서 너에게 키스를 한다'에 노래를 붙였고, 이 곡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그녀의 최근 싱글 앨범인 타바숨(Tabassum)은 '전쟁이 꿈을 앗아간 아이들'을 위한 헌정곡이다.

    가화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끝없는 전쟁 때문에 나는 평화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그녀의 가사는 이러한 고통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내 조국의 하늘은 분쟁으로 창공을 가르는 미사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채로운 연으로도 장식되어 있어요. 저는 매 순간 저의 소중한 사람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을 떠올립니다. 항상 그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이 떠나지 않아요.

  • 모니카 아라야

    코스타리카 친환경 교통운동가

    모니카 아라야는 교통수단을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기후전문가다. 그녀는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코스타리카가 선도적 입지를 확보하는데 기여한 시민 이니셔티브 '코스타리카 림피아'를 포함해, 아메리카와 유럽 지역에서 다양한 지속가능성 캠페인을 이끌어왔다.

    아라야는 "교통 문제에 관한 유엔 기후 행동"의 특별자문이다. 또한 배출가스 없는 교통수단 구축을 위한 캠페인 '루트제로'에도 자문을 제공하며, '기후사업재단'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그녀의 '테드' 강연은 약 400만의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31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2016년 아라야는 세계 최대 규모의 여성 남극 탐험대에 참여하기도 했다.

    *우리의 '노멀'을 다시 만들 때입니다. 휘발유와 경유에 대한 수요를 줄이는 것은 그 자체로 매우 중요한 일이며, 기타 다른 사회 변혁 아젠다를 위한 정치적 지지를 모으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캐롤리나 가르시아

    아르헨티나 넷플릭스 감독

    캐롤리나 가르시아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의 감독이다.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자랐다. 댄서와 가수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았고, "20세기 폭스사" 인턴으로 엔터테인먼트 산업 커리어를 시작했다.

    크리에이티브 분야 경영진으로서 그녀는 "기묘한 이야기", "사브리나의 오싹한 모험", "루머의 루머의 루머", "별나도 괜찮아", "슈퍼키드 디온" 등 다양한 히트작을 만들었다.

    할리우드에서 선도적 역할을 하는 라틴계 미국인 중 한 명인 가르시아는 작품에서 라틴계 미국인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라틴계는 미국 인구중 다섯 명중 한 명일 정도로 미국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지난 몇 년간 우리의 삶은 흔들렸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짧습니다. 왜 우리의 소중한 시간을 두려움 속에서 보내야 하나요? 저희 할머니께서 "인생은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제 그 말씀에 귀기울일 때입니다.

  • 자밀라 고든

    소말리아 루마체인 CEO

    인공지능(AI) 분야 이론가인 자밀라 고든은 AI를 이용해 글로벌 식품 공급망의 끊어진 부분을 연결하는 선도적 플랫폼 "루마체인"의 창업자다.

    그녀는 소말리아에서 태어났고, 10대 때 내전을 피해 케냐로 왔다. 그 후 호주로 이주했고 기술에 대한 공부에 빠져들었다. 루마체인 창업 전에는 IBM의 글로벌 경영진과 콴타스의 그룹 최고 정보 책임자를 거쳤다.

    그녀는 2018년 "국제 여성 기업가정신 챌린지"에서 마이크로소프트 글로벌 어워드를 수상했고, 2021년 "올해의 여성 AI 혁신가" 시상에서 호주 및 뉴질랜드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저는 AI가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자신의 올바른 자리를 찾을 수 있게 하며, 기업을 변화시킬 것이라 강하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 유마

    투르크메니스탄 심리치료사

    유마는 게이퍼레이드를 축하하는 가족의 모습이 담긴 슈퍼마켓 광고 제작에 참여했다가 반발을 산 이후 지난 8월 러시아를 떠나야 했다. 심리치료사이자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인 그녀는 현재 스페인에서 살고 있다.

    유마(성을 비공개로 해달라고 요청함)는 2013년 비전통적 성관계에 대한 홍보를 금지한 '게이 프로파간다(gay propaganda)' 법안을 러시아가 통과시킨 후 성소수자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녀는 2017~2018년 무렵 러시아 경찰에 의해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체첸 출신의 성소수자들에게 심리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러시아 내 LGBT 축제와 행사도 지원하고 있다.

    *강제적인 격리는 우리에게 긴밀한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합니다.

  • 난푸 왕

    중국 영화제작자

    중국의 외딴 지역 출신이며 영화제에서 상을 받기도 했던 영화제작자 난푸 왕은 현재 미국에서 거주하며 일하고 있다.

    그녀의 데뷔작인 "훌리건 스패로우(Hooligan Sparrow, 2016)"는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상 후보에 올랐다. 그녀는 또한 "원 차일드 네이션(One Child Nation, 2019)"과 코로나19 발발에 대해 중국과 미국 정부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다룬 "인 더 쎄임 브레스(In the Same Breath, 2021)"를 감독했다.

    왕은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상하이 대학, 오하이오 대학, 뉴욕 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권위주의 정권과 부패, 신뢰의 부족이 가져오는 결과를 파헤치는 연구를 통해" 2020년 맥아더 지니어스 그랜트(MacArthur Genius Grant)를 수상하기도 했다.

    *전 세계가 정상이라 생각하는 상태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던 환경들이 지금의 위기를 만들었습니다.

  • 미아 크리스나 쁘라띠위

    인도네시아 환경운동가

    미아 크리스나 쁘라띠위는 비영리 단체 "그리야 루후(Griya Luhu)"를 통해 발리섬의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지역 사회와 함께, 그녀는 폐기물을 수집하고 처리하고 관리 데이터를 수집하는 앱 기반 시스템 "디지털 웨이스트 뱅크(digital waste bank)"를 개발했다.

    미아 크리스나 쁘라띠위는 반둥 테크놀로지 연구소(the Institut Teknologi Bandung)에서 환경공학 학위를 받았고, 지역 폐기물 은행의 활동을 감독하는 운영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인도네시아 덴파사르 시 국립환경청 소속 환경 분석가이기도 하다.

    *트리 히타 카라나(Tri Hita Karana, 행복의 근거는 신·인간·자연이 상호 조화로운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 철학에 따라, 지구에 균형과 조화를 회복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오염의 원인일 수도 있지만, 해결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아비아 아크람

    파키스탄 장애인권운동가

    아비아 아크람은 1997년 "특별한 재능 교환 프로그램(the Special Talent Exchange Program)"에 학생으로 참여하면서 장애인권운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영연방 청년 장애인 포럼'의 코디네이터로 지명된 최초의 파키스탄 여성이다. 또한 전국장애인여성포럼의 창립자이며 '장애인의 권리와 포용적 발전'에 관한 UN 협약 이행 촉구하는 캠페인을 벌여왔다.

    그녀는 UN 2030 아젠다 및 지속 가능한 개발 목표에 장애와 관련된 항목이 포함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상을 새로이 정립하기 위하여, 우리는 함께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뉴 노멀'이 구축될 사회 전반을 개선하고 이를 통해 포괄적인 발전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 조스 보이즈

    영국 건축가

    조스 보이즈는 건축 설계 분야에서 접근성과 포괄성을 혁신하고자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이 모인 프로젝트 "디스오디너리 아키텍처"의 공동 이사다.

    건축과 사회적 실천을 결합해온 그녀는 1980년대 "매트릭스 페미니스트 디자인 콜렉티브"를 공동 설립했고, 논문 "공간 만들기: 여성과 남성이 만든 환경"에도 저자로 참여했다. 다양한 국제 단체에서 학문적 활동을 수행했고, 여성주의 공간에 대한 실천을 연구해 건축 디자인 분야에 창의적인 도전을 보여주었다.

    40여 년간 활동하며 그녀는 '장애를 가진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일상 속의 사회적, 물질적 실천'을 우리 사회에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는 지난 1 년여 동안 소외되었던 이들과 장애를 가진 이들의 경험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를 인식하는 것은 집단적 돌봄과 상호 의존의 공간으로 우리 사회를 다시 세우는 창의적인 기제가 될 것입니다.

  • 아즈미나 드로디아

    캐나다 범블 안전정책 책임자

    아즈미나 드로디아는 젠더와 기술, 인권 분야의 전문가다. 현재는 데이트 앱 "범블"의 안전 정책 책임자로 일하고 있다. 2021년 7월 그녀는 저명한 여성 인사 200여명과 함께 소셜 미디어에서 벌어지는 학대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을 만들었다.

    그녀는 "해로운 트위터: 온라인 속 여성에 대한 폭력과 학대"라는 보고서도 집필했다. 이 보고서는 성에 기반한 학대와 이것이 계급 및 인종과 교차되는 양상을 탐구했다.

    드로디아는 과거 월드 와이드 웹 파운데이션에서 젠더와 데이터 권리 분야 문제를 다뤘다. 그리고 여성 및 소외된 집단의 안전한 온라인 경험을 구축하기 위해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했다.

    *온라인 공간을 설계할 때 여성의 경험을 고려하는 세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성들, 특히 여러 정체성을 가진 여성들이 온라인 공간을 동등하고 자유롭게 그리고 두려움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 하이디 J. 라르손

    미국 백신신뢰프로젝트 이사

    인류학자이자 런던 열대위생의학 대학의 "백신신뢰프로젝트" 이사다. 하이디 라르슨은 사회 정치적 요인이 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대처를 어떻게 좌우하는지에 대한 연구를 이끌고 있다. 현재 그녀의 학문적 관심사는 백신의 위험성에 대한 루머에 대처하고 백신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쌓는 것이다.

    그녀는 "백신 루머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왜 사라지지 않는가"라는 책의 저자이자, 임신 중 백신 접종이 가져오는 영향에 대한 글로벌 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라르손 박사는 잘못된 정보의 확산과 관련된 과학적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2021년 '에든버러 메달'을 수상했다.

    *팬데믹은 이미 양극화로 분열된 세계를 점령했습니다. 어떤 백신도 우리를 분열시키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개인과 공동체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인류의 책임있는 행동만이 세계를 다시 세우는데 기여할 것입니다.

  • 세비드젬 어니스틴 레이케키

    카메룬 기후 운동가

    세비드젬 어니스틴 레이케키는 양봉으로 산불에 대처하고 있다. 그녀가 만든 단체는 2000여 명의 양봉업자에게 양봉 기술, 품질 관리, 밀랍추출 등을 교육했다. 또한 산림을 지키기 위해 '벌이 좋아하는' 나무 8만6000여 그루를 심었다.

    레이케키는 카메룬에 "젠더와 환경 감시"라는 단체를 동료들과 함께 만들었다. 이 단체는 카메룬 환경 문제 및 여성의 역량 강화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2만 헥타르의 "킬럼-아이짐"과 같은 숲들은 지역 사회의 노력을 통해 보존될 수 있다고 믿는다.

    *산림 보전과 생계 활동에서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생태적, 사회경제적 권리가 충분히 고려되는 세상을 원합니다.

  • 피아메 나오미 마타아파

    사모아 총리

    사모아 최초의 여성 총리이자 "사모아 하나의 신을 위한 믿음당(FAST)"의 대표다. 27세의 나이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부총리, 여성 사회 개발부 장관, 법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그녀는 주요 수석 추장직도 맡고 있으며 정무직을 희망하는 사모아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그녀는 환경 문제에 커다란 관심을 가지고, '지구 온난화에 가장 취약한 지역 중 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후 비상 사태에 대처하고 있다.

    *단결이 있는 곳에 미래세대를 위한 희망이 있습니다.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나이지리아 작가

    나이지리아 출신 작가이자 페미니스트의 아이콘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작품은 3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그녀는 커뮤니케이션 및 정치학을 공부하기 위해 19세에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녀의 첫 번째 소설 "퍼플 히비스커스(2003)"는 영연방 작가상을 수상했고, "아메리카나"는 2013년 뉴욕 타임즈가 선정한 10대 도서로 선정됐다.

    2012년 아디치에의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테드 강연은 페미니즘에 대한 전 세계적 담론을 촉발시켰고, 2014년 책으로도 출간됐다. 최근 그녀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게 받치는 "비탄에 관한 기록(2021)"을 썼다.

    *'건강은 세계 어디에서든 누릴 수 있는 인간의 권리'라는 말을 생각해 봅시다. 건강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누릴 수 있는 것이지, 돈을 지불할 수 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것이 되서는 안됩니다.

  • 린 응구기

    케냐 언론인

    린 응구기는 디지털 뉴스 플랫폼 "투코(TUKO)"에서 인류의 관심사에 대해 영감을 주는 다양한 기사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언론인에게 주는 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처음에는 암 환자들을 돌보는 자원 봉사자였다. 2011년 "키우 필름"을 시작으로 이후 "카타르 파운데이션"에서 언론인 활동을 했다. 또한 소셜 미디어 인플루언서이며, 자국 내 미디어 업계의 명사이다.

    그녀는 2020년 '올해의 인도주의 저널리스트 상'을 수상했고, 2021년에는 "아이 체인지 네이션스 커뮤니티 엠베서더(I Change Nations Community Ambassador)" 상을 수상했다.

    *모두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곳으로 이 세상이 다시 정립되었으면 합니다.

  • 라지아 바라크자이

    아프가니스탄 저항운동가

    라지아 바라크자이는 수년 간 대통령궁 소속으로 정부를 위해 일했지만,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권력을 장악한 후 일자리를 잃었다.

    이후 그녀는 수많은 여성들이 카불의 거리로 나와 일할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요구하는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녀는 또한 '#AfghanWomenExist'이라는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두려움 때문에 소셜 미디어를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다.

    바라크자이는 법학과 정치학을 공부했고, MBA 학위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저항운동 경험과 관련해 BBC에 쓴 편지에서 "자유를 위해 죽는 것이 노예로 사는 것보다 낫다"고 말했다.

    *이 나라의 교육받은 이들과 젊은이들, 특히 용감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언젠가 자유의 기수가 될 것입니다. 저는 매일 거리 시위에서 이러한 희망을 발견합니다.

  • 아만다 응웬

    미국 사회적 기업가

    아만다 응웬은 성폭행 및 강간 범죄 피해자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단체 "라이즈"의 최고 경영진이다.

    민권 운동가이자 사회적기업가인 아만다 응웬은 2013년 하버드대 재학 중에 성폭행을 당했고, 증거 인멸 전 6개월 내에 기소를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라이즈를 설립했고, 강간 피해자의 증거 보존권을 위한 "성폭행 범죄 피해자 권리법"의 초안 작성에 기여했다.

    미국 내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 범죄에 대해 2021년 그녀가 만든 영상은 온라인 상에서 큰 화제가 됐고, "스톱 아시안 헤이트" 운동의 전환점이 됐다.

    *함께 한다면, 그 누구도 무력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존재를 드러낼 때 그 누구도 이 사회에서 감춰지지 않을 것입니다.

  • 모니카 파울루스

    파푸아뉴기니 주술 폭력 반대 운동가

    인권 운동가 모니카 파울루스는 주술 시행과 관련된 폭력(사망 등 불의의 사고가 벌어졌을 때 주술을 사용했다는 의심을 근거로 주로 여성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부터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하이랜드 위민 휴먼 라이트 디펜더스 네트워크"를 공동 설립했다. 이 단체는 주술을 사용했다며 범죄 혐의를 뒤집어쓴 여성들에게 은신처와 법률 자문을 제공하고, 관련 사례를 UN 등 국제기구에 알리고 있다.

    이들의 노력으로 파푸아뉴기니 정부는 "주술 관련 폭력 위원회"를 만들었다.

    2015년 파울루스는 그녀가 보여준 용기있는 활동을 인정받아 UN "위민 오브 어취브먼트 상"과 "파푸아뉴기니 여성상"을 받았다. 국제 앰네스티 오스트레일리아는 그녀를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여성 중 한 명으로 칭했다.

    *우리는 세계를 재정립해야하고 우리 모두가 인류의 일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성별은 절대로 인류를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 만주라 프라디프

    인도 인권운동가

    만주라 프라디프는 인도에서 가장 억압받는 이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변호사다. 구자라트 지역 최하층 계급 출신인 그녀는 카스트 제도와 성차별에 맞서왔다. 그녀는 인도 최대의 달리츠('불가촉천민'으로 알려졌던 인도 최하층 계급) 권리 단체인 "나브사르잔 트러스트(Navsarjan Trust)"를 이끌기도 했다.

    그녀는 올해 "전국 여성 지도자 협의회"를 공동 설립했다. 또한 소외된 청소년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와이즈 액트 오브 유스 비저닝 앤드 인게이지먼트"라는 단체도 창설했다.

    그녀는 "인터내셔널 달리트 솔리다리티 네트워크(International Dalit Solidarity Network)"의 일원으로서 UN 세계인종차별철폐회의에 나가 달리트의 권리를 주장했다.

    *저는 세계가 연민과 사랑을 가진 곳으로 다시 세워져,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선두에 소외된 여성들이 나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소마 사라

    영국 에브리원즈 인바이티드 창립자

    소마 사라는 2020년 6월 "에브리원즈 인바이티드(Everyone’s Invited)"를 만들었다. 성적 학대의 생존자들을 위한 인스타그램 계정이자 웹사이트다. 이 곳은 영국의 학교와 대학에서의 성차별을 폭로하는 한편, '강간 문화'를 근절시키기 위해 성폭력 피해자들이 익명으로 증언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이 프로젝트는 출범 이래 5만여 건의 이야기를 수집했고, 2021년 3월 런던 거리에서 납치되어 살해된 '사라 에버라드 사건' 이후 더 큰 주목을 받았다.

    사라는 그녀가 참여하는 캠페인을 학술계 이상으로 확장해 여성 혐오에 저항하려 하고 있다.

    *저는 세계가 성폭력 피해자들의 말에 귀기울이고, 믿어주며, 지지해주기를 바랍니다.

  • 미나 스몰만

    영국 사제, 교육자

    미나 스몰만은 2013년 영국 성공회 최초로 소수 인종 출신 여성 부주교가 됐다. 현재는 영국 성공회 사제직을 은퇴하고 교사로 일하며 보다 안전한 영국의 거리 및 경찰 개혁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스몰만의 딸 니콜 스몰만과 비바 헨리는 2020년 런던 공원에서 19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그녀는 최초 실종 신고 당시의 경찰 대처를 비판하며 자신의 두 딸이 '인종 프로파일링(피부색, 인종 등을 기반으로 용의자를 추적하는 수사 기법)'과 '계급차별'의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그녀는 딸들의 살인범을 용서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증오할 때, 포로가 되는 것은 그들뿐만이 아니라 당신입니다. 당신이 복수심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러한 일이 벌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교사이자 성직자로서, 저는 사람들이 외면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데 제 삶을 바쳤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차별을 받는다면, 목소리를 높여주세요. 우리는 바꿀 수 있습니다.

  • 애들레이드 라라 탐

    중국 디자이너

    애들레이드 라라 탐은 '음식과의 인류의 현대적 관계'라는 관점으로 인류의 라이프스타일을 탐구해온 예술가이자 음식 디자이너다.

    애들레이드 라라 탐은 중국에서 태어나 홍콩 영주권을 취득했고, 현재는 네덜란드에거주하고 있다. 그녀의 작품은 산업계의 식품 생산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소비자에게는 자신의 먹거리 및 그 생산에 따르는 책임을 생각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18년 소 도축에 대해 성찰한 그녀의 작품이 "퓨처 푸드 디자인 어워드(the Future Food Design Awards)"에서 심사위원상과 대중 평가상을 받았다. 2021년 미식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선정한 "50 넥스트(50 Next)"에도 이름을 올렸다.

    *2021년 세상은 크게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그것이 어떻게 식탁에 오르는지에 대해 세상이 더 많이 공감하기를 바랍니다.

  • 안 로즈 누 따웅

    미얀마 수녀

    안 로즈 누 따웅 수녀는 미얀마 군부 정권 반대 시위의 상징적 인물이다. 그녀는 자신의 교회에 은신한 시위대를 구하기 위해 경찰 앞에 무릎을 꿇었다.

    2021년 3월 중무장한 경찰을 향해 그녀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있는 사진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널리 퍼졌고 폭넓은 찬사를 받았다.

    안 로즈 누 따웅 수녀는 민간인, 특히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녀는 조산사 훈련을 받았고, 최근 미얀마 카친 주에서 코로나 환자들을 돌보는 등 지난 20년간 봉사를 실천해왔다.

    *미얀마에서 일어난 일을 목도하며 가슴이 몹시 아팠습니다. 만약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면, 감옥에 갇힌 모든 이들을 조건 없이 석방하고 모두가 평등한 삶을 누리게 만들 것입니다.

  • 베라 왕

    미국 패션 디자이너

    1970년대부터 패션 업계에서 결혼식 의복 디자인을 선보이며 활약했던 베라 엘렌 왕은 향수와 출판, 주택 디자인 등으로 사업 영역을 꾸준히 넓혀왔다.

    그녀는 뉴욕에 사는 중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고 보그지의 선임 패션 편집자였으며 "랄프 로렌"의 디자인 이사였다. 또한 10대 때는 재능 있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였다.

    그녀는 미국 패션 디자이너 협회의 회원이며 이 단체로부터 '2005년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선정됐다.

    *우리 모두는 같은 것에 취약합니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리가 더 빨리, 그리고 더 지적이고 실존적인 방법으로 함께 노력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 나아질 것입니다.

  • 밍-나 웬

    마카오 배우

    애니메이션 뮬란 (1998)과 뮬란 II (2004)에서 뮬란의 목소리를 연기한 밍-나 웬은 미국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대표적인 아시아 출신 미국 배우다. 화제를 모았던 미국 의학 드라마 "ER"과 "인컨시버블(Inconceivable)"에 출연했다.

    현재 그녀는 인기 있는 디즈니+ 시리즈 "맨달로리안(The Mandalorian)"에서 페넥 샨드 역을 맡아 연기를 보여주고 있으며, 조만간 "보바 펫의 이야기(The Book of Boba Fett)"에도 출연할 예정이다. 2019년 밍-나는 '디즈니 레전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녀는 2022년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예정이다.

    *새롭게 정립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닌데 굳이 뒤로 가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믿어요. 우리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하루는 저마다 뭔가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늘을 살아갔으면 합니다.

  • 올루예미 아데티바-오리자

    나이지리아 해드포트 파운데이션 설립자

    올루예미 아데티바-오리자는 변호사이자 '프로보노 법률 서비스'(사회적 약자를 위해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활동을 하는 여성 로펌 "헤드포트 파운데이션"의 설립자다.

    그녀의 로펌은 라고스에 본부를 두고 있다. 이들은 부당하게 수감되었지만 보석을 받을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은 물론, 재판을 받지 못하고 오랫동안 구금된 이들(나이지리아에서는 재판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교도소 인구의 약 70%를 차지한다)을 돕기 위해 교도소를 찾는다. 올루예미 아데티바-오리자의 팀은 미성년 범죄자들이 교도소 밖에서 또 다른 기회를 찾을 수 있게 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헤드포트 파운데이션은 2018년 운영을 시작한 이래 경미한 범죄로 기소된 125여명에게 무료 법률지원을 해왔다.

    *세계를 재정립하기 위해 우리 모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세계의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선한 의지를 밝히고, 옹호하며, 지지해야 합니다.

  • 레벨 윌슨

    호주 배우, 작가, 프로듀서

    법학을 전공한 레벨 윌슨은 할리우드의 스타 배우이자 작가, 제작자, 감독이다. 시드니에서 연기 경력을 시작할 때부터 자신의 시나리오를 써왔다. 호주에서 코미디 작품으로 이름을 떨쳤고 2010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녀는 여성들이 주역을 맡은 히트 코미디 작품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했다. 오스카상 수상작인 "조조 래빗"에 출연했고, 박스 오피스에서 크게 흥행한 뮤지컬 3부작 "피치 퍼펙트"에서 팻 에이미 역으로 인기를 얻었다.

    윌슨은 2022년에 자신의 첫 번째 장편 영화를 연출할 예정이다.

    *다양성과 존중, 포용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 캐서린 콜리스

    아일랜드 지역 사학자

    캐서린 콜리스는 갤웨이에 있는 '본 세쿠어스 모자원'에서 796명의 아이들이 사망한 사건을 조사했다. 수년 간에 걸친 그녀의 조사는 1920~1950년대 미혼모 지원 기관으로 사용되던 곳에 수백 명의 유아들이 기록도 없이 매장된 사실이 밝혀지는데 일조했다.

    최근 이러한 미혼모 지원 기관에 대한 장기간의 조사가 담긴 보고서가 나왔다. 조사 결과 다양한 질병에 의한 '끔찍할 정도로 높은 유아 사망률'이 드러났고, 아일랜드 정부가 사과했다.

    콜리스는 '인도주의적 활동'을 인정받아 아일랜드 인권 수호상을 받았다.

    *만약 제가 세상을 다시 복구할 수 있다면, '부끄러움'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싶습니다. 사전에서 '자신이 잘못했다는 고통스러운 굴욕감'으로 정의하는 말이죠. 이 다섯글자는 엄청난 힘을 휘두릅니다.

  • 알바 루에다

    아르헨티나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가

    알바 루에다는 아르헨티나 최초로 고위 정부직에 오른 최초의 성전환자다. 아르헨티나의 여성 및 다양성부에서 다양성 정책 차관을 맡고 있다

    활동가이자 학자인 알바 루에다는 "트랜스 우먼 아르헨티나(Trans Women Argentina)"의 대표다. 이 단체는 공공 영역 일자리의 1%를 트랜스젠더와 트랜스베스타이트(생물학적 이성의 차림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 할당하는 '트랜스 노동 쿼터 법안' 캠페인을 벌였다. 이 법안은 의회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2021년 6월 통과됐다.

    2019년 루에다는 자신의 신분증에 표기된 이름과 성별로 교회의 기록을 변경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가톨릭 대주교를 고소했다.

    *2021년은 경제 정책이 불평등 재생산에 미치는 커다란 영향력을 입증한 해입니다. (우리는) 다른 관계를 구축하고 또 다른 집단적 보살핌을 가능하게 하는 '트랜스페미니스트' 관점의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 모하데스 미르자이

    아프가니스탄 파일럿

    모하데스 미르자이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민간 항공 조종사다. 그녀는 올해 초 승무원 전원이 여성인 캄에어(Kam Air) 보잉 737기의 조종사가 됐다. 2020년 9월 민간 항공사에서 근무하게 된 후, 그녀는 터키와 사우디아라비아, 인도 등지를 오가는 항공기를 조종해왔다.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했을 때 미르자이는 공항에서 항공기 운항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륙허가는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는 다른 항공기에 승객으로 타서 조국을 떠났다. 미르자이는 "여성과 남성이 나란히 일할 수 있는 사회적 평등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꿈은 빠른 시간 내에 비행을 재개하는 것이다.

    *기다리지마세요. 당신이 강하게 서지 않는다면 아무도 당신에게 날개를 달아주지 않을 겁니다. 저는 제 자신을 위해 싸웠고, 당신도 자신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라면, 그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 나타샤 아쉬가르

    영국 웨일스 의회 의원

    나탸샤 아쉬가르는 1999년 구성된 세네드 또는 웨일스 의회에서 의원으로 당선된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이다.

    보수당 소속이며 사우스이스트 웨일스 지역구 의원인 나타샤 아스가르는 교통기술부 소속 '그림자 장관(정권 이양의 경우를 예측해 야당이 구성해놓은 내각 관료)이다. 그녀는 웨일스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고 경제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게 할 '트래블 카드'를 만들고 있다.

    그녀는 정계 입문 전에는 은행원, TV 진행자, 라디오 DJ로 일했고, 두 권의 책을 썼다.

    *우리는 함께 힘을 합쳐 '뉴 노멀'이라는 험난한 길을 가야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우리의 삶을 가장 적합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들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하죠.

  • 엘리사 롱콘 안티레오

    칠레 제헌의회 의장

    엘리사 롱콘 안티레오는 2021년 새로운 칠레 헌법을 만들기 위해 선출된 17명의 원주민 대표 중 한 명이다. 언어학자이자 교사인 그녀는 칠레 원주민이 처음으로 참여하게 된 제헌회의를 이끌고 있다.

    롱콘은 '마푸체(Mapuche)'라는 가장 큰 원주민 공동체 소속이다. 원주민 공동체에 자치권과 권리를 부여하고 그들의 문화와 언어를 인정하는 '다원주의적 국가'를 지지하고 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랐고 인종 차별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인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현재 산티아고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팬데믹 동안 매일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도한 후, 인간과 비인간에게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임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의 삶은 물과 숲에서부터 벌과 개미에 이르기까지 지구가 보유한 모든 자원에 달려 있습니다.

  • 타냐 무진다

    짐바브웨 모터크로스 선수

    타냐 무진다는 남성 중심의 모터크로스(오프로드 오토바이 레이싱) 세계를 누비는 선수다. 그녀는 1957년 대회가 시작된 이래 모터크로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최초의 짐바브웨 여성이다.

    타냐 무진다는 바이크 선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섯 살 때부터 체계적인 훈련을 받았다. 현재 17세인 무진다는 여자 모터크로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아프리카 원주민 최초로 우승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아프리카 연합은 2018년 그녀를 '올해의 주니어 스포츠우먼'으로 선정했다.

    그녀는 모터크로스를 통해 얻는 수입으로 하라레 지역에 있는 학생 100여 명의 수업료를 내주는 등 자선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저는 세상을 완전히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아요. 세상은 결코 완벽하지 않았고,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었습니다. 현재 우리가 싸우고 있는 것들을 고쳐서 미래 세대는 그럴 필요가 없게 만들었으면 합니다.

  • 나탈리아 파스테르나크 타슈너

    브라질 미생물학자, 과학 해설자

    나탈리아 파스테르나크는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언론 칼럼과 미디어 출연 등의 활동을 통해 브라질 사람들에게 질병과 관련된 중요한 과학 정보를 제공했다.

    그녀는 상파울루 대학에서 박테리아 유전학 박사 학위를 받은 과학 해설자이자 미생물학자다. 세계적인 신경과학자인 스튜어트 파이어스타인으로부터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컬럼비아 대학에 초청받기도 했다.

    그녀는 공공 정책 분야에서 과학적 증거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비영리 단체 "과학 질문 협회"를 설립했고 대표를 맡고 있다.

    *홀로코스트 피해자의 자손으로서, 저는 권위주의 정부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팬데믹 동안 브라질의 과학을 위해 목소리를 높인 것은 '잊지는 말자(Never Forget)'는 역사적 교훈을 실천하기 위한 제 자신의 헌신이었습니다.

  • 파이퍼 스테이지 넬슨

    미국 세이프 얼라이언스 공공 전략 책임자

    파이퍼 스테이지 넬슨은 텍사스 오스틴 소재 "세이프 얼라이언스(SAFE Alliance)"의 공공전략 최고 책임자다. 그녀는 아동학대와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을 막기 위해 지역사회와 협력하고 있다.

    이 단체는 임신 6주부터 낙태를 금지하는 주의 법안 때문에 낙태를 할 수 없는 어린 강간 피해자들에게 상담을 제공하고 있다.

    스테이지 넬슨은 여성과 소녀들의 권리를 증진시키기 위해 생애를 받쳤다. 그녀는 미셸 오바마의 "여성에게 교육을(Let Girls Learn)" 이니셔티브, 정치계 내 여성의 활동을 신장하기 위한 정치 행동 위원회인 '애니스 리스트(Annie's List)' 등에서 활동했다.

    *코로나19는 이미 사회적 변화 방향을 새롭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말할 수 있는 권리를 깨달았습니다. 이제 과제는 모든 남성과 여성, 아이들에게 신체적 자율과 동의의 중요성에 관해 교육하는 것입니다.

  • 사기 가흐레만

    이란 시인

    사기 가흐레만은 이란계 캐나다 작가이자, 이란 퀴어 기구(IRQO)의 공동 설립자 및 대표다.

    토론토에 있는 이 단체는 이란에 거주하거나 강제 추방된 게이와 레즈비언,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권리를 보호하고 이란에서 벌어지는 동성애자의 권리 침해를 감시하고 있다.

    사기 가흐레만은 2010년 이란 퀴어 문학에 초점을 둔 "길가미샨 북스(Gilgamishaan Books)"를 설립했다. 국제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편집자이자 4권의 시집, 많은 기고를 쓴 작가로서 가흐레만은 젠더와 섹슈얼리티 규범에 도전하는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세계가 재정립될 때, 그 안에는 우리 모두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만약 "우리(We)"가 성적 다수의 특권이 당연시 되는 세계에 성소수자들을 포함시킬 때 세계는 비로소 코로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 세브다 알투노루크

    터키 골볼 선수

    시각 장애를 갖고 태어난 세브다 알투노루크는 프로 골볼(시각장애인이거나 눈을 가린 세 명의 선수가 방울이 박힌 공을 상대 골대에 던지는 스포츠) 선수다

    2018년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가 '세계 최고의 골볼 선수'로 선정한 알투노루크는 두 번의 패럴림픽, 두 번의 세계 선수권 대회, 네 번의 유럽 선수권 대회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패럴림픽과 2020년 도쿄 패럴림픽에서는 터키 여자 대표팀의 금메달 획득을 이끌었다.

    그녀는 아나톨리아 토카트에서 태어났고, 앙카라에서 체육학 학위를 받았다.

    *장애는 장애물이 아니라, 자기 표현의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 바바라 스몰린스카

    폴란드 기업가, 리본돌 아티스트

    리본돌 인형(인공 피부 등으로 진짜 아기처럼 사실적으로 만든 인형)'은 유산을 경험했거나 아이를 잃은 여성들을 도와주거나, 여성의 불안과 우울증, 불임 문제에 대처하는데 사용된다. 폴란드의 예술가 바바라 스몰린스카는 치료 보조용 도구로 사용되는 아기 인형을 만드는 인형 디자이너다.

    한때는 음악가였던 그녀는 미용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고 "리본 슈가 베이비스(Reborn Sugar Babies)"를 설립했다. 그녀가 만든 수제 인형은 의료기관에서 의사, 간호사, 조산사를 훈련할 때나 영화 촬영을 할 때 사용된다.

    작품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스몰린스카는 자신의 작품이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고 여성의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리라 믿고 있다.

    *많은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었던 리본돌 치료처럼 사람들이 기존과 다른 것에 공감하고, 더 개방적이고 관대한 태도를 가졌으면 합니다.

  • 무그다 칼라

    인도 낫 뎃 디프런트 공동 설립자

    자폐를 가진 12살 아이의 엄마이자 자폐 권리 운동가인 무그다 칼라는 "낫 댓 디프런트(Not That Different)"의 공동 설립자다. 이 단체는 신경 다양성(다양한 신경질환을 정상의 범주에 포함시키자는 운동)에 대한 포용과 이해에 초점을 둔 사회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녀는 아이들이 자폐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신경다양성을 지지하게 만들기 위한 만화 제작도 지원하고 있다.

    칼라는 방송 산업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경력을 쌓은 미디어 전문가다. TV 진행자이자 다큐멘터리 영화 작가이며, 다양성과 포용력을 가르치는 코치이기도 하다.

    그녀는 또한 인터랙티브 라이브 팟캐스트 앱인 "백스테이지(Bakstage)"의 수석 콘텐츠 전략가로 일하고 있다.

    *팬데믹은 70억 명의 인류가 각자의 세계에서는 혼자이지만, 비슷한 고통에 구속받는 현실을 만들어 냈습니다. 저는 이 경험이 인간에 대한 보다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를 바랍니다.

  • 남작부인 헬레나 케네디 QC

    영국 세계변호사협회 인권사무소 이사

    여성과 소수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활동으로 유명한 스코틀랜드의 변호사 헬레나 케네디 QC 남작부인은 40년 동안 법조계를 지켜왔다. 최근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위험에 처한 여성들을 돕는 세계변호사협회 인권연구소의 이사를 맡고 있다.

    그녀는 몇 년간 옥스포드 대학의 맨스필드 칼리지의 총장직을 수행했고, 획기적인 "보나베로 인권 연구소(Bonavero Institute of Human Rights)" 설립에 기여했다.

    케네디 남작부인은 사법제도가 여성을 어떻게 배제하고 있는가를 주제로 다양한 책을 썼고, 1997년 노동당 소속 상원 의원이 됐다.

    *우리의 인권은 우리의 사건을 논할 변호사와 재판을 담당할 독립적인 판사(남성 판사뿐만 아니라 여성 판사)가 없다면 무의미합니다.

  • 아이만 르 클레어

    이집트 트랜스 아시리아스 창립자

    카이로 오페라 하우스'의 현대 무용수이자 안무가였던 아이만 르 클레어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경찰 탄압을 받고 이집트를 탈출해야 했다. 2008년 미국으로 망명했고 현재는 뉴욕에서 예술가, 무용가, 배우, 성소수자 권리 운동가로 살고 있다.

    르 클레어는 트랜스젠더들이 안전한 나라로 이주하는 것을 돕는 유럽 단체 "트랜스이미그레이트"의 아랍 관계 담당자이자 이사다.

    2021년 3월 '국제 트랜스젠더의 날'에 그녀는 망명 신청자들을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곳으로 옮겨주고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트랜스 아시리아스"를 설립했다.

    *이미 지구상에서 가장 취약한 트랜스젠더들은 팬데믹으로 인해 가정 내 은둔을 강요받는 등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됐습니다. 세계가 봉쇄되면서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더욱 절박하게 들립니다. 이제 세상은 그들을 구하고 그들이 상처를 치유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 나즐라 엘망구쉬

    영국 리비아 외무부 장관

    리비아 사상 첫 여성 외무부 장관. 변호사 및 외교관 출신의 나즐라 엘망구쉬는 올해 장관으로 임명됐다. 2011년 리비아 혁명 당시 그녀는 시민사회 건립을 위해 만들어진 '국가 임시 평의회' 의장을 맡았었다.

    그녀는 '미국 평화 연구소'의 리비아 대표였으며, '세계 종교 및 외교, 분쟁의 해결을 위한 센터'에서 평화 구축과 법률 프로그램 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현재는 자국의 정치적 내분으로 인해 사임 압력을 받고 있으며 최근 출국이 금지됐다.

    그녀는 벵가지 대학에서 법학 학위를, 조지 메이슨 대학교에서 '갈등 분석과 해결'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21년 세상은 크게 진화했습니다. 저는 세계이 다시 시작하고, 우리의 삶에 의미와 목적을 가져오고, 보다 나은 인간애를 가져다주기를 바랍니다.

  • 무루 메스핀

    에티오피아 간호사

    10여년의 경력을 가진 간호사 무루 메스핀은 현재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래이 지역 메켈레에 있는 '원스톱 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이 센터는 성적 학대와 폭력을 당한 이들에게 의료, 심리, 법률 서비스를 제공한다.

    메스핀은 3년 전 티그레이 지역에서 어린 소녀들 및 여성들에 대한 폭력을 종식시키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2020년 말 시작된 내전으로 인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메스핀은 언젠가는 평화를 되찾아 자신의 일을 계속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나는 모든 분쟁이 종식되고, 국가들은 무기 판매 협상 보다는 평화를 위해 일하고, 어린 소녀와 여성을 강간하는 범죄자들과 학대자들이 법으로 처벌받도록 세계를 재설정하고 싶습니다.

  • 나즐라 하비비아르

    아프가니스탄 기업가

    나즐라 하비비야르는 아프간 여성들이 직조업을 창업하고 중개상 없이 해외에 물건을 팔 수 있도록 돕는 "블루 트레져 주식회사"와 "아크 그룹"을 설립했다. 그녀는 국제개발처(USAID) 및 월드뱅크와 함께 프로젝트르 하면서, 비즈니스 분야에서의 여성의 권한 강화와 기후 변화 대응을 위해 노력해왔다.

    2012~2015년, 하비비아르는 아프가니스탄 정부 "수출 증진 사무소"를 이끌며 아프가니스탄의 해외 수출 증대에 기여했다.

    그녀는 또한 비영리 부문에서 13년 넘게 일하며 소녀들을 위한 교육을 지원했고, 거주지를 잃은 가정을 위해 "아프간 베라시티 케어(the Afghan Veracity Care)"라는 단체를 설립 및 운영해왔다.

    *아프간 여성으로서 많은 비참한 일을 경험했지만, 저는 다음 세대에게 전쟁을 물려주지 않는 일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 리마 아프쉬드

    아프가니스탄 시인

    리마 아프쉬드는 문학상을 받은 시인이자 작가로, 작품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문화에 존재하는 가부장적 규범에 도전하고 있다.

    저널리즘을 공부한 리마 아프쉬드는 독립 언론인 및 사회 논평가로 5년여의 경력을 쌓았다.

    그녀는 카불 시문학 협회인 "셰르-에-다네시가"의 회원이다. 이 단체는 팬데믹 속에서도 온라인으로 시모임을 열고 회원 200여 명에게 공동체 의식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아프가니스탄의 몰락은 우리가 20년 동안 투쟁했던 진흙탕 속으로 다시 빠져드는 것과 같아요. 하지만 저는 어두운 숲에서 빛을 향해 뻗어가는 나뭇가지처럼 우리도 다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로야 사다트

    아프가니스탄 영화제작자

    로야 사다트는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기도 한 20년 이상의 영화계 베테랑이다. 영화제작자이자 감독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탈레반 시대에 데뷔한 최초의 여성 감독이다. 그녀의 영화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목소리와 삶, 그리고 그들에게 강요된 제약을 다룬다.

    2017년 그녀의 영화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는 제90회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부분에 아프가니스탄 후보로 선정되었다.

    사다트는 독립 영화사인 "ROYA 필름 하우스"의 공동 설립자이자 대표다. 그녀는 또한 아프가니스탄에 국제 여성영화제를 만들고 위원장 직무를 수행했다.

    *탈레반 집권 초기 5년간, 저는 탈레반 정권이 몰락하고 학교에 다닐 수 있기를 꿈꿨습니다. 오늘날에도 저는 자유와 국민들의 목소리가 승리할 것이라 믿고 있어요.

  • 프레시타 카림

    아프가니스탄 차르마츠 모바일 라이브러리 설립자

    카불에 기반을 둔 "차르마츠"는 버스를 이동 도서관으로 만들어, 인근 도시를 다니며 아이들에게 도서와 예술 활동을 제공한다.

    아동 인권 운동가인 프레시타 카림은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공 정책 석사 학위를 받은 후, 2018년 차르마츠를 설립했다.

    그녀는 12 세 때 어린이 텔레비전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의 아동 인권 상황에 대한 기사를 보도했고, 이후로도 해당 분야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해왔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일합니다. 아이들이야 말로 사악한 업악과 폭력의 고리를 끊어내고 치유와 새로운 정치의 공간을 창출할 '굴레의 파괴자'라고 생각합니다.

  • 자르라쉬트 할라임자이

    아프가니스탄 레퓨지 트라우마 이니셔티브 CEO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이었던 자르라쉬트 할라임자이는 난민에게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고 폭력과 추방으로 인한 정서적 피해를 치유하게 돕는 "레퓨지 트라우마 이니셔티브(Refugee Trauma Initiative, RTI)"의 공동 설립자이자 CEO다.

    RTI 설립 전, 그녀는 시리아와 터키 국경 지역의 취약 계층 아이들에게 교육을 지원하고 NGO들에게 난민 교육과 복지에 관해 자문해왔다.

    할라임자이는 2018년 시민사회를 혁신한 20명의 글로벌 리더를 선정하는 '오바마 파운데이션(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이 후원하는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저의 미래 희망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삶을 파괴해온 폭력의 악순환을 종식시키는 것입니다.

  • 크리스탈 바야트

    아프가니스탄 사회운동가

    사회운동가 및 인권운동가인 크리스탈 바야트는 2021년 탈레반의 정권 탈취에 반대하는 시위를 통해 알려졌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독립기념일(8월 19일)에 카불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한 7명의 여성 중 한 명이다. 올해 정치경영학 박사과정을 시작했지만 탈레반으로 인해 학업을 이어가지 못했다.

    그녀는 현재 미국에 머물며, 아프가니스탄이 인권 분야에서 성취했던 것들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박사학위를 마치면 책을 쓰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저는 궁극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민주적 변화의 일부가 되고자 합니다. 제 꿈은 UN에서 연설하는 것입니다. 세계가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특히 여성이 정말 말하는 바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사에다 에테바리

    아프가니스탄 보석 디자이너

    사에다 에테바리는 조국 아프가니스탄의 전통과 지역에서 나오는 보석 등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만든다. 이러한 작품들은 워싱턴 D.C.의 "스미스소니언(Smithsonian)"에 전시됐다.

    사에다 에테바리는 기업가이자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석 디자이너다.

    난민촌에서 한 살 때 뇌수막염에 걸려 청각을 잃은 그녀는 아버지가 설립을 지원한 청각 장애인 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터키 마운틴 인스티튜트 포 아트 앤드 아키텍처(Turquoise Mountain Institute for Arts and Architecture)에서 보석 디자인을 전공했다.

    *이제 여성들은 직업을 갖지 못하고 남성들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며, 아프가니스탄의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제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 라일라 하이다리

    파키스탄 마더캠프 설립자

    라일라 하이다리는 카불에서 마약 재활센터 "마더 캠프(Mother Camp)"를 운영했다. 그녀는 마약 중독자들에 대한 터부에도 불구하고 2010년부터 아프가니스탄인 약 6400명을 지원했다. 그녀는 자신이 저축한 돈으로 센터를 세웠고 중독에서 벗어난 이들이 운영하는 식당(카불 함락 이후 폐쇄됨)으로 재정을 충당했다.

    하이다리의 가족은 원래 바미안 출신이지만 파키스탄에서 태어났다. 12 세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야 했던 그녀는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위협과 반대 속에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자신의 투쟁을 그린 다큐멘터리 "라일라 앳 더 브릿지(2018)"에 출연하기도 했다.

    *인식의 확산되어, 세상이 도덕적이고 인간적으로 변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미국 시민의 투표가 아프가니스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서로 연결된 세상에 살고 있어요.

  • 사라 와헤디

    아프가니스탄 스타트업 에테사브 CEO

    사라 와헤디는 아프가니스탄 기술 스타트업 에테사브의 설립자다. 에테사브는 카불 주민들에게 실시간 안전 상황과 전력, 교통 정보를 제공하는 앱을 만들었다. 이 앱은 사제폭발물(IED) 공격, 공개 구타, 가택 습격 등에 대해 믿을 만한 정보를 제공해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안전을 지키는데 크게 기여했다.

    사라 와헤디는 2022년에는 시골 지역의 사람들도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SMS를 이용한 경보 기능을 만들고 있다.

    그녀는 타임지가 선정한 2021년 '차세대 리더' 중 한 명으로 현재 컬럼비아 대학에서 인권과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고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와 국가 재건을 위한 단체 설립을 요구하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의 저항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젊은 학생들의 건강과 보편적 교육을 위한 실천적 노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 파슈타나 두라니

    아프가니스탄 교사, 런 아프가니스탄 설립자

    런(LEARN) 아프가니스탄의 설립자이자 행정 이사인 파슈타나 두라니는 소녀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혁신하는 일에 헌신해온 교사다. 런은 칸다하르에 학교를 세우고 교사들을 위한 교육과 학생들을 위한 멘토십을 제공하고 있다.

    이 단체는 "루미(학습자가 6분간 모바일로 학습을 경험하게 해주는 앱)"를 통해 여학생들이 학습 자료, 동영상, 교육용 게임을 이용할 수 있게 지원한다. 또한 시골 지역 여성들을 위한 조산사 훈련도 제공하고 있다.

    두라니는 UN 아프가니스탄의 청소년 대표다.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의 교육 접근권을 향상시킨 공로로 말랄라 기금(파키스탄 출신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이름을 딴 기금)이 수여하는 "교육 챔피언 상"도 수상했다.

    *세계가 우리를 얼마나 억압하려 하는지를 살펴보면 정말 충격적입니다. 하지만 얼마나 상처를 입었든 그 길이 얼마나 멀든, 우리는 인내하며 이겨낼 것입니다.

  • 자라 자자이

    아프가니스탄 경찰

    자라 자자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반군의 활동이 격렬했던 코스트 지방 소재 경찰 범죄 수사국의 첫 여성 부국장이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내 4000여 명의 여성 경찰 중 한 명이며 터키 경찰 학교에서 전문 교육을 받았다.

    복무중 그녀는 반군의 살해 위협뿐 아니라, 남성 동료들의 협박과도 싸워야 했다.

    2021년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이후 자자이는 고국을 떠나야만 했다. 이후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에 숨어있는 다른 여성 경찰들의 안전을 우려하고 있다.

    *제 꿈은 전통적인 가부장 사회에 도전하며 다시 경찰 제복을 입는 것입니다. 여성들이 일할 권리가 사라진 곳에서 다시금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위해 일하고 싶습니다.

  • 베나프샤 야쿠비

    아프가니스탄 장애인권운동가

    둘 다 시각 장애를 가진 야쿠비와 그녀의 남편은 아프가니스탄 내 시각 장애인에게 교육과 재활을 제공하는 "라햐브 오가니제이션(Rahyab Organization)"을 세웠다. 아쿠비는 시각 장애 아동 교육을 위한 독립 인권 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

    탈레반의 침공 이후,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나야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고, 탈레반이 장애인을 차별할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접근성과 차별의 문제는 1인당 장애를 가진 인구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아프가니스탄에서 심각한 문제다. 수십 년 간 이어진 정치적 갈등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원인중 하나다.

    *아프가니스탄이 더 많은 자유와 포용을 확보하는 것을 지켜보는 게 제 희망입니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각자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 파히마 미르자이

    아프가니스탄 윌링 더비쉬 무용수

    파히마 미르자이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윌링 더비쉬(이슬람 수피교에서 행하는 세마 의식) 무용수다. 그녀는 수피교의 혼성 무용 및 이를 위한 예술가 그룹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단체에 '신비주의자의 직관'이라는 뜻을 가진 "소후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녀는 서로 다른 성별이 함께 하는 활동이 금기시되는 전통 종교 사회에서 무용을 통해 자신이 활동할 공간을 만들어 가고 있다. 또한 아프가니스탄에서 문화적 관용이 싹트기를 바라며,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행사를 조직하기도 했다.

    2021년 탈레반이 수피교의 윌링 더비쉬를 이단적이고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것으로 규정하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국을 떠나야 했다.

    *저는 저의 영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평화를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내면의 평화가 온 세상에 퍼질 것입니다.

  • 박사 알레마

    아프가니스탄 철학자, 사회 운동가

    철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알레마는 평화부 소속 '인권 및 시민사회 담당 차관'이었다. 그녀는 또한 "독립 여성 정치 참여 위원회"의 설립자이자 여성 인권 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독일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알레마 박사는 갈등 분석을 분야에서 20년 이상의 연구활동을 해왔다.

    그녀는 독일-아프가니스탄의 국제 관계,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권한 강화 등을 주제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또한난민과 이민자, 실향민을 위한 인도주의 법률의 전문가이자 중재자이기도 하다.

    *제 꿈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아프가니스탄입니다. 현대 헌법에 따라 시민의 권리가 보호되고, 여성이 평등한 시민으로서 모든 영역에 참여할 권리가 보장되는 것이죠.

  • 샴시아 하사니

    이란 거리예술가

    분쟁으로 황폐화 된 도시에 색을 입히는 샴시아 하사니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그래피티 예술가다. 그녀는 카불의 버려지거나 훼손된 건물에 자신감과 힘, 야망이 넘치는 여성들을 그려넣고 있다.

    이란 내 아프가니스탄 가정에서 태어난 하사니는 카불에서 시각 예술을 공부했고, 15개 이상의 국가를 다니면 벽화 작업을 해왔다. 그녀는 "포린 폴리시지(Foreign Policy magazine)"가 뽑은 100대 글로벌 사상가 중 한명이며, 선구적인 여성들의 이력을 모은 책 "굿나잇 스토리즈 포 레벨 걸스 2(Goodnight Stories for Rebel Girls 2)"에도 이름을 올렸다.

    탈레반의 침공 이후, 하사니는 그녀의 작품을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제가 조국을 위해 희망을 품을 때마다, 상황은 항상 더 나빠졌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희망을 더 이상 품을 수 없습니다. 희망이 없어지는 것보다, 희망을 갖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 파이자 다르하니

    아프가니스탄 환경운동가

    아프가니스탄에서 기후 변화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인 파이자 다르하니는 바다흐샨 지방의 국립환경보호청 이사를 역임했다. 대학의 교수이기도 한 그녀는 여성의 권리를 위한 활동에도 참여한다.

    다르하니는 말레이시아 푸트라 대학에서 조경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의 연구 분야는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의 식량 생산을 위한 수직 농업 등 지속 가능한 도시 경관 관리와 혁신 기술이다.

    그녀의 바람은 환경 보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높이고 여성 중심의 지속 가능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다.

    *군중 속에 파묻혀 있지 않고 뛰쳐나오는 것은 용기 있는 결정입니다. 당신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 꿈은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과 전쟁과 온갖 오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 룩사나

    아프가니스탄 외과의사

    룩사나는 외과의사이자 대학 교수다. 분쟁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쫓겨난 환자들에게 기본적인 건강 관리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단체를 세웠다.

    그녀는 갖은 분쟁으로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취약 계층에게 의료 지원을 제공해왔다. 국립 암 통제 프로그램의 자원봉사자이며, 유방암에 대한 인식 확산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일에 대해 큰 열정을 가지고 있으며, 아프가니스탄 의대생들에게 자신이 영감의 원천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든 주요한 변화는 리더들이 헌신이 낳은 결과입니다. 제가 리더는 아닐지 몰라도 아프가니스탄에 남아 마비되고 부패한 의료 시스템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 주할 아트마르

    아프가니스탄 기업가, 재활용 공장 굴-에-무르살 설립자

    아프가니스탄의 첫 폐지 재활용 공장인 "굴-에-무살(Gul-e-Mursal)"의 설립자는 여성 사업가 주할 아트마르다. 경제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그녀는 2016년 카불에 여성들이 일하는 공장을 설립했다. 현장 근무부터 마케팅까지 100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는데, 그중 30%가 여성에게 돌아갔다.

    이 공장은 NGO로부터 폐기물 및 비기밀 종이를 수거한 뒤, 일주일에 35톤 분량의 재활용 화장지를 만들어 전국에 판매한다.

    아트마르는 여성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며 재정 지원을 받는 것의 어려움을 세상에 알려왔다.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청소년과 여성들의 꿈과 목표, 희망이 무너졌습니다.

  • 무카다사 아마드자이

    아프가니스탄 사회운동가, 정치운동가

    무카다사 아마드자이는 아프가니스탄 동부 낭가르하르 지방에서 400여 명의 젊은 여성들을 조직해 인근 지역의 가정 폭력 피해자들을 도왔다.

    사회운동가로서 무카다사 아마드자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잘못된 정보의 확산으로 피해를 받는 여성들과 지역사회를 돕기위해 나섰다. 그녀는 과거 "아프가니스탄 청년 의회" 구성원으로 활동하던 당시부터 여성과 아이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해왔다.

    2018년 그녀는 UN개발계획(United Nations Development Programme)이 평화 구축과 분쟁 해결에서 뛰어난 업적을 보여준 여성들에게 주는 "N-평화상(N-Peace Awards)"을 받았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변화는 경험해본 적이 없어요. 마치 이전에는 정부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제 우리의 유일한 희망은 젊은 세대들이 그 공백을 메우고 제도를 개혁하는 것. 하지만 이것은 국제적인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할 것입니다.

  • 파티마 술타니

    아프가니스탄 산악인

    파티마 술타니는 2019년 취미로 등산을 시작했다. 현재는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여성들에게 등산의 재미를 알려주겠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18세의 나이에 "노샤크(Noshakh)" 정상에 올랐다. 해발 7492미터로 힌두쿠시(Hindu Kush) 산의 정상이자 가장 높은 아프가니스탄 최고봉인 곳이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의 젊은 산악인 9명으로 이루어진 팀과 함께 했는데, 그중 3명이 여성이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술타니는 지난 7년간 복싱과 태권도, 주짓수 국가 대표팀으로도 활약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20년 동안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워왔습니다. 그들은 높은 산에 올라 자신의 이름을 알렸습니다. 그들이 세계 곳곳의 높은 산들을 다시 자유롭게 오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나스린 후세이니

    아프가니스탄 수의사

    나스린 후세이니가 카불 대학에서 수의학을 공부하던 당시, 75명의 학생 중에 여성은 2명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란에서 난민으로 자랐고, 학업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왔다. 이후 귈프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고 동물 보건학을 공부하기 위해 캐나다로 이주했다.

    후세이니는 현재 면역학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그리고 여가시간을 활용해 하자라족 등 캐나다 내 아프가니스탄 소수민족을 지원하는 비영리 단체 "캐나다 하자라 휴머니테리안 서비스(Canadian Hazara Humanitarian Services)"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그녀는 또한 아프가니스탄 어린이들에게 독서와 스토리텔링을 지원하는 청소년 프로그램 "부키스(Bookies)"도 돕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과 소녀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으며 현재는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항상 방법은 있습니다. 밥 말리(Bob Marley)가 말했듯, "강해지기 전까지는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 아메나 카리미안

    아프가니스탄 천문학자

    토목 기술자이자 헤라트 기술 대학의 강사인 아메나 카리미안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천문학 발전에 힘써 온 최초의 여성 중 한 명이다.

    그녀는 2018년 "카이하나 천문 그룹(Kayhana Astronomical Group)"을 세우고 젊은 사람들에게 천문학을 배우도록 독려하고 있다.

    2021년 7월 모두 여성으로 구성된 카리미얀과 그녀의 천문학 그룹은 폴란드에서 열린 '국제 천문학 및 천체 물리학 대회'에 참가해, 50여 국가 255 개 팀 중 1위를 차지하며 "세계천문연맹상"을 수상했다.

    *탈레반은 어린 여성들이 교육받을 권리를 부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카이하나 천문 그룹은 매일 밤 온라인으로 만납니다. 제 유일한 바람은 조국의 젊은이들에게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 파티마 가일라니

    아프가니스탄 평화 협상가

    파티마 가일라니는 '공정한 정치적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2020년 탈레반과의 협상에 나섰던 4명의 여성 평화 협상가 중 한 명이다. 지난 43년간 인도주의적 활동에 참여해온 그녀는 자국내 저명한 정치 지도자이기도 하다.

    1980년대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대표 중 한 명으로 나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저항했다. 런던 망명 중에는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의 대변인으로 일했다. 2001년 미국이 주도한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와 새로운 헌법 제정에 기여했다.

    2005~2016년 아프가니스탄 적신월사(붉은 초승달 모양의 표장을 사용하는 이슬람권의 적십자사)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도 이 단체의 이사직을 맡고 있다.

    *저는 의미있는 국가적 대화를 통해 실제 국가 건설이 이루어지기를 희망합니다.

  • 사하르

    아프가니스탄 축구선수

    사하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축구를 하고 싶었지만 탈레반의 정권 장악으로 인해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젊은 여성들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지난 몇 년간 지역 축구팀에서 뛰었고 스포츠를 통해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올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했을 때, 그녀는 가족과 함께 은신했다가 다른 국가로 피난을 떠났다.

    그녀는 아직도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지 못한 동료 선수들의 안전을 걱정하는 한편,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소망을 놓지 않고 있다.

    *저는 계속 교육을 받고 제 목표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저는 물론 제 가족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이룬 성공으로 여자들은 축구를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이들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 안젤라 가요르

    아프가니스탄 교사, 온라인 학교 설립자

    안젤라 가요르가 세운 "헤라트 온라인 스쿨(Herat Online School)"에는 약 1000명 학생과 400여 명의 교사 자원봉사자가 있다. 그녀는 탈레반이 여학생들과 젊은 여성들의 외출을 금지한 이후, 온라인 학교를 만들었다. 현재 이 학교는 텔레그램이나 스카이프로 수학, 음악, 요리, 미술 등 170여 개의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가요르의 가족은 1992년 내전 때 헤라트에서 이란으로 피신했다. 당시 그녀의 가족은 임시 비자를 받급받은 상태였기에, 그녀는 5년간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그녀는 이후 중학교 교사가 됐고, 여러 번의 이주를 거쳐 현재는 영국에 정착했다.

    *저는 소위 필요악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행복은 세계가 악의 순환을 멈추고 탈레반과 같은 악을 용인하지 않을 때 실현될 것입니다.

  • 사하르 페트라트

    아프가니스탄 페미니스트 활동가

    사하르 페트라트는 성 고정관념에 맞서는 수많은 시위를 조직한 페미니스트 운동가다. 10대부터 페미니스트 실천운동에 참여했다. 그녀는 1차 탈레반 정권 당시 이란과 파키스탄으로 피신했다가, 2006년 카불로 돌아왔다.

    그녀는 스토리텔링에 페미니스트 관점을 접목시켜, 글을 쓰고 영화를 제작한다. 노상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에 대한 다큐멘터리 "나의 침묵을 믿지 마라(Don't Trust My Silence, 2013)" 등이 그 예다. 페트라트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유네스코 교육부와 인권감시센터에서 일을 했다.

    그녀는 센트럴 유럽 대학에서 "크리티컬 젠더 스터디"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 킹스 칼리지에서 전쟁에 관한 공부를 하고 있다.

    *어린 여성들이 교육받을 권리가 투쟁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권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프가니스탄 소녀들이 더 높은 꿈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 할리마 사다프 카리미

    아프가니스탄 정치인, 전 국회의원

    할리마 사다프 카리미는 아프가니스탄 북부 조우잔 주 출신의 국회의원이자 다년간 의정 활동을 한 정치가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내 약 70명 정도였던 여성 하원의원 중 한 명이다. 의회 내 우즈벡 소수민족 출신으로는 그녀가 유일했다. 그래서 그녀는 의회에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대학에서는 정치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여성 인권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한 그녀는 탈레반의 위협때문에 여러 차례 거주지를 옮겨야 했다.

    2020년 대학생이던 그녀의 남동생이 탈레반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기적인 정권들은 항상 오래가지 않아 실패했습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이 정치, 문화, 경제, 사회 관련 활동에 참여하고, 인권을 보장받고, 인도주의적 위기를 막아내기를 바랍니다.

  • 아니사 샤히드

    아프가니스탄 언론인

    지난 10여년간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유명했던 언론인 중 한 명인 아니사 샤히드는 인권 유린, 정치, 부패 등을 기사로 다뤄왔다.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매체 중 하나인 토로 뉴스(TOLO News)에서 속보를 주로 담당했다.

    샤히드는 언론인이자 여성이라는 이유로 직접적인 위협을 받았고,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이 정권을 탈취하자 급히 피신해야 했다. 2020년에는 팬데믹 상황에서 보여준 '용감한' 취재 활동을 인정받아, 국경 없는 기자회의 언론자유상을 수상했다.

    2021년,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자유언론허브 네트워크에 의해 올해의 저널리스트이자 '언론 자유의 얼굴'로 선정되었다.

    *이탈과 절망의 정점에 서서, 아프가니스탄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여성들과 소녀들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저의 조국, 저의 집, 그리고 저의 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기를.

  • 와히다 아미리

    아프가니스탄 사서, 저항운동가

    사서이자 책 애호가인 와히다 아미리는 법학을 전공한 저항운동가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권력을 장악했을 때, 더이상 도서관에서 일할 수 없게 된 그녀는 카불의 거리로 나갔다. 그녀가 참여한 시위에는 많은 여성들이 함께 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일할 권리와 교육받을 권리를 지지해달라"고 국제 사회에 호소했다.

    탈레반이 시위를 금지한 이후, 아미리는 여성들을 모아 독서와 토론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그녀가 일하던 도서관은 2017년부터 운영됐다. 그녀는 책이 없다면 자신의 정체성이 사라지는 것이라며 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세상은 우리를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이 파괴되면서, 우리는 시위를 통해 희망을 되살리고 정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 로힐라

    아프가니스탄 학생

    로힐라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중등학교에서 여학생들을 배제하면서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됐다. 과학과 영어를 좋아한다는 그녀는 매일 아침 등교를 하는 그녀의 남자 형제들처럼 학교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로힐라에 따르면, 학교를 갈 수 없게 된 또래 여자 친구들 중에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이들은 거의 없다. 하지만 그녀는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도 배움을 계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장학금을 받고 유학을 가서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제 세상과 단절되었고, 공부를 하겠다는 제 꿈은 헛된 꿈이 된것 같습니다. 국제사회가 우리를 잊지 않고, 우리의 수년간의 노력이 헛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 마헤라

    아프가니스탄 의사

    마헤라는 지금도 산부인과 병원에서 환자들을 돌보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의료 서비스가 중단된 지역을 돌아다니며 긴급 치료를 제공하고 도움이 필요한 환자들을 만나야 한다.

    그녀는 이전에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도왔지만, 탈레반의 권력 장악 이후 그 일은 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희망이 줄어들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은 20년 전의 그들이 아니며, 어느 정도는 자신의 권리를 지켜낼 수 있습니다. 다만 고민이 있다면 여자 아이들이 영원히 학교가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 로샤낙 와닥

    아프가니스탄 의사

    전직 국회의원이자 산부인과 의사인 로샤낙 와닥은 25년 이상 여성들을 위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심지어 그녀의 고향 마이단 와닥을 탈레반이 처음 장악했던 당시에도, 그녀는 유일한 여성 의사로 일을 했었다.

    2001년 탈레반이 몰락한 후, 그녀는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녀의 고향은 15년 동안 탈레반의 지배를 받았고, 다른 시골 지역처럼 나토군과의 치열한 전투를 경험했다.

    그녀는 BBC에 탈레반의 정권 이양과 종전이 '꿈'처럼 느껴졌다고 말했다. 그리고 "부패한 사람들을 권력에서 몰아내는 이 날을 기다렸다"고 했다. 최근 그녀는 여학생이 다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탈레반과 맞서고 있다.

    *나의 유일한 바람은 아프가니스탄이 정부 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지난 40년간 국가를 망친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 호다 카모시

    이란 월경 권리 운동가

    여성 인권 운동가인 호다 카모시는 생리에 대한 개방적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내 학교에서 "월경은 금기가 아니다"라는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이란으로 온 아프가니스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는 어린 시절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녀의 어머니는 보수적인 친척들에 굴하지 않고 그녀를 교육시켰다. 시인이자 저널리스트인 카무쉬는 2015년 라디오 진행자가 됐다. 당시 그녀는 여성에 대해 정의롭지 못한 현실을 알리는 한편, 마을 여성들을 위해 읽기와 쓰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녀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이후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된 여학생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어두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2021년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빼앗은 사람들의 채찍과 총탄에 맞서 권리를 주장했던 해입니다. 저는 올해를 희망의 해로 부르고자 합니다.

  • 레하나 포팔

    아프가니스탄 변호사

    이민 및 민법 전문가인 레하나 포팔은 현재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고국에 남겨진 아프가니스탄 통역사와 번역가, 관계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포팔은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변호사로 개업한 최초의 아프가니스탄 여성이다. 그녀는 5살 때 난민 신분으로 영국에 와서 국제 정치와 법률을 공부했고 지금은 인권 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2019년 그녀는 올해의 여성 변호사(Barrister of the Year at the Inspirational Women in Law Awards)로 선정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과 소녀들이 두려움 없이 교육과 일과 삶의 자유를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 모메나 이브라히미

    아프가니스탄 경찰

    경찰이 된 지 3년 후, 모메나 이브라히미는 선배로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다. 그녀는 당시 아프가니스탄 경찰 사회에 있는 다른 학대 정황들을 포함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로 결심했다.

    이후로 그녀는 협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 및 또 다른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싸워왔다. 그녀는 "누군가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믿었고 비록 목숨을 잃더라도 그 사람이 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BBC에 말했다.

    이브라히미는 지난 8월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뒤 수천 명의 아프가니스탄 사람들과 함께 영국으로 대피했다.

    *몇 년 동안 투쟁하고, 공부하고, 경력을 쌓았던 모든 여성들이 일터로 복귀하여 국민의 의지에 반해 권력을 행사하는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워졌으면 합니다.

  • 바시라 페이검

    아프가니스탄 성소수자 인권 운동가

    바시라 페이검은 성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 몹시 어려운 아프가니스탄에서 지난 8년 동안 성 평등과 성 소수자의 권리를 위해 활동해왔다.

    그녀는 동료들과 함께 젠더와 성 인지에 관한 워크숍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학대를 당한 성소수자 커뮤니티 구성원들에게 조언과 의학적 치료를 위한 재정을 제공했다. 그들은 또한 정신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성소수자들이 심리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활동도 해왔다.

    현재 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성소수자 커뮤니티에 대한 인식 개선을 지원하고, 그들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는 아프가니스탄 사람들이 종교와 젠더, 성적 성향을 따질 필요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사고 체계를 변화시킬 것입니다.

  • 라다 악바르

    아프가니스탄 예술가

    라다 악바르의 시각 예술 작품은 여성에 대한 혐오와 억압을 다룬다. 그녀는 사회 내 여성의 존재를 드러내고 여성을 지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을 사용해 왔다

    그녀는 2019년부터 매년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해 '슈퍼우먼(Abarzanan)' 전시회를 열어 자국 역사에서 여성이 보여준 중추적 역할을 기념하고 있다. 최근까지 그녀는 카불을 비롯한 여러 지역에 여성 역사 박물관 개소를 추진중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예술이 여성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가치를 무시하는 사회 제도와 법을 꼬집는데 기여한다고 믿고 있다.

    *아프가니스탄과 국민들은 수십 년 동안 극단주의자들 및 세계 지도자들로부터 학대와 침해를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우리는 진보적인 국가 건설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자유롭고 번영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마부바 세라즈

    아프가니스탄 여성 인권 운동가

    26년간의 미국 망명 생활 후, 마부바 세라즈는 2003년 모국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왔다. 그때부터 그녀는 여성과 아동의 권리를 위한 여러 단체들을 공동 설립하고 이끌어 왔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운동의 초석이 된 "아프가니스탄 여성 네트워크"도 그중 하나다.

    그녀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아이들의 건강과 교육을 위해 싸우고, 부패에 맞서는 데 삶을 바쳐왔다. 그리고 2021년 8월 탈레반이 정권을 잡았을 때도 그녀는 국민들과 함께 하며 국내외 언론을 통해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목소리를 용기 있게 전했다.

    타임지는 그녀를 '2021년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으로 선정했다.

    *평화는 조국을 위한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알 수 없는 미래 때문에 나의 자매들과 딸들의 눈에 서리는 공포를 보고 싶지 않아요. 계속 이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 알리야 카지미

    아프가니스탄 교육자

    알리야 카지미는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하기 전까지 인권과 교육에 헌신해왔다. 그녀는 적십자에서 3년간 자원봉사로 일했고, 여성들을 위해 제과제빵 사업을 시작했으며, 2020년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녀는 대학에서 가르쳤고, 교수가 되는 것을 꿈꿨다.

    2021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이후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갔고, 현재는 박사과정 공부를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BBC에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특히 의상과 관련되 자유에 대해 열정적으로 토로하는 편지를 보내왔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저의 유일한 바람은 평화입니다. 평화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 살리마 마자리

    이란 정치인, 전 지자체장

    살리마 마자리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던 3명의 여성 지자체장 중 한명이다. 올해 그녀는 탈레반과 최전선에서 싸우는 친정부 민병대의 지도자로서 주목을 받았다.

    난민이었던 마자리는 이란에서 학위를 받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왔다. 2018년에는 발흐주 샤킨트 지역의 자치단체장이 되었고, 100여 명의 탈레반 반군의 항복을 협상으로 이끌어냈다. 그녀가 이끌었던 지역은 2021년 탈레반에 거세게 저항했고, 카불 함락 전까지 점령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한때 탈레반에 생포된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이후 미국으로 탈출했다.

    *저는 여성, 하자라족, 시아파, 페르시아어를 쓰는 사람이라는 저의 정체성이 조국에서 범죄가 되지 않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실라 엔산도스트

    아프가니스탄 교사

    교사인 실라 엔산도스트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여성과 소녀들이 교육받을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다. 그녀는 종교학 학위를 가지고 있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왔다.

    그녀는 정치와 시민사회 영역에서 여성의 역할을 늘리는 데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아프가니스탄 언론에 출연해 여성의 일할 권리와 배울 권리를 주장하기도 했다. 최근 엔산도스트는 여성에 대한 억압에 항의하기 위해, 수의처럼 보이는 하얀색 천을 두르고 카불에서 열린 시위에 참여했다.

    교사로 일하면서도 그녀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여러 여성 단체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해왔다.

    *저는 여성들이 정치, 사회, 경제 문제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싶어요. 그리고 여성의 교육받을 권리가 보장되고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폭력과 불평등은 근절되기를 소망합니다.

  • 닐로파르 바야트

    아프가니스탄 휠체어 농구 선수

    휠체어 농구 국가대표팀 주장이자 장애 여성 인권 운동가로 유명한 닐로파르 바야트는 탈레반을 피해 아프가니스탄을 탈출했다. 그녀와 휠체어 선수였던 남편 라미쉬는 둘 다 국제적십자사 직원이었다.

    그녀가 2살이었을 때 로켓탄이 그녀의 가족을 덮쳤다. 이 사고로 그녀의 남동생이 죽고 그녀는 척추를 다쳤다. 바야트는 카불 한복판에 있는 야외 경기장에서 자신의 첫 번째 경기를 펼쳤고, 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스포츠 역사의 전환점이 됐다. 그녀는 고국을 떠나는 난민들의 목소리가 되었고,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을 위한 협회를 설립했다.

    바야트의 소망은 다시 농구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쟁이 끝나서, 우리가 전쟁의 대가를 1초라도 더 치르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 국민들 얼굴에서 진짜 미소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마랄

    아프가니스탄 사회운동가

    마랄의 가족은 그녀가 여성 인권 운동에 참여하거나 시민 사회 단체의 일원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여성으로서 집을 나가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2004년부터 마랄은 지역 여성들을 모아 그들의 권리를 깨닫게 하고, 일을 통해 경제적 독립을 얻도록 돕고 있다.

    그녀는 또한 농촌 지역의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과 함께 하며, 피난처를 제공하고 사회적 정의 회복을 돕고 있다.

    *저는 우리가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했던 모든 것을 되새기며 싸움을 지속할 용기를 되찾았습니다. 저는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래는 평화와 인류애를 바라는 이들의 몫입니다.

  • 쇼구파 사피

    아프가니스탄 오케스트라 지휘자

    쇼구파 사피는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여성 오케스트라인 조흐라(Zohra)의 지휘자다. 그녀는 13~ 20세 나이의 음악가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는데, 단원 중에는 가난한 가정 출신이거나 고아도 있다.

    페르시아 음악 여신의 이름을 딴 조흐라는 2014년부터 국내외 무대에서 아프가니스탄 전통음악과 서양 고전음악을 연주해 오고 있다.

    탈레반은 사피가 한때 이용하던 아프가니스탄 국립 음악원을 폐쇄했다. 악기도 챙기지 못하고 도하로 탈출한 그녀와 몇몇 동료들은 다시 연주를 함께 할 수 있기를 갈망하고 있다.

    *희망은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완전한 어둠 속에서도 저는 제 지휘봉이 아프가니스탄에 희망과 빛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 라즈마

    아프가니스탄 음악가

    뛰어난 음악가인 '라즈마'는 보통 남성들이 주로 연주하는 악기를 연주한다.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과 예술을 전공한 그녀는 아프가니스탄 음악가들은 물론 국제적으로 저명한 예술가들과 공연했다.

    그녀는 음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새로운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에 따르면, 올해는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는 "가장 어두운 한 해"였다. 더 이상 다른 사람과 연주를 할 수 없게 된 뮤지션으로서, 올해는 더욱 더 고통스러웠다고 한다.

    탈레반이 통치한 1996~200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음악이 금지됐다. 라즈마는 그때의 역사가 되풀이될까 걱정하고 있다.

    *음악과 노래가 없는 사회를 생각하면 더할 나위 없이 슬퍼집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의 잠재된 목소리가 궐기의 외침으로 변모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